사탕이 오늘 알았다

버려지고 잊혀졌던 조선시대 비운의 공주

핑크무새๑╹ワ╹๑ 2017. 11. 24. 14:22

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비운의 공주 이야기

 

 

 

 

 

효종 즉위년인 1949년, 청의 섭정왕 도르곤은

조선의 왕 효종에게 사신을 파견해 조선의 공주를

계비로 맞이하겠다는 구혼 칙서를 전달합니다.

 

구혼 상대가 여느 황족이 아닌 청나라 어린 황제인

순치제의 섭정왕이자 계부로써 언제 황제로 등극해도

이상치 않을 권력을 가진 도르곤의 정비가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병자호란의 패배로 반청 감정이 높았던

조선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구혼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효종은 미혼인 공주는 2세에 불과하다고

거짓말을 하였으며 질녀인 소혼세자의 딸들도 숨기었고

다른 왕족들과 대신들 역시도 자신들의 딸을 숨기기에

급급하였다고 하는데요,

 

 

 

 

 

 

 

 

그 와중에 자진하여 자신에게 혼기가 찬 아름다운

딸이 있음을 밝힌 금림군 이개윤,

 

효종은 크게 기뻐하며 금림군의 딸을 양녀로 삼아

공주의 작위를 내리고 청으로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가 바로 의순공주 인데요, 그녀가 청나라로 출발하자

효종은 서대문 밖 모화관까지 나아가 송별했으며

백관들은 반으로 너누어 홍제원까지 수행토록 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이 될 도르곤은 6만 명의 수행인을 이끌고

산해관 부근의 연산으로 마중나와 그녀와 혼인을 합니다.

 

당시 청나라는 어린 여인이 왕의 아내가 되어 살아가기엔

시련과 고난이 많은 나라였지만 도르곤은 자신의 어린 아내를

지극히 사랑해 주었기에 그녀 역시도 남편 도르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채 1년도 가지 않았고

결혼한지 7개월 만에 도르곤은 사냥을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도르곤이 급사한 이후 청나라에서는 그를 역적으로

몰아세우고 그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게 됩니다.

 

홀로 남겨진 의순공주는 재산마저 다 빼앗기고

과부의 몸에 무일푼 신세가 되었고 역적의 아내라는

꼬리표까지 달면서 의순공주 역시도 청나라의

법에 따라 재산에 속해져 팔려가는 처지가 됩니다.

 

이후 다른 청나라에서 다른 남편을 만나게 되지만

그 남편 역시도 급사하며 의순공주는 졸지에

두 번이나 남편을 잃은 과부가 되어버립니다.

 

이후 그녀를 가엾에 여긴 그녀의 친아버지

금림군 이개윤은 청의 황제에게 직접 상소를 올려

자신의 딸의 고향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되고 그녀는

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청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인을 달갑게 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에

힘들어했고 더이상 정치적 가치가 사라진 그녀에 대한

조정의 태도 또한 돌변하여 그녀의 아버지를 탄핵 시키고

의순공주라는 칭호 또한 빼앗아 가버립니다.

 

 

 

 

출처 - 유튜브 랭킹패치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시집을 갔지만

타국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돌아왔고

귀향을 해서도 손가락질을 받으며 안타까운

삶을 이어가야만 했던 비운의 의순공주.

 

힘없는 작은 나라의 종친으로 태어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쓰여지고 버려진 그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비운의 공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