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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이 오늘 알았다

모든걸 잃어야했던 비운의 경혜공주

by 핑크무새๑╹ワ╹๑ 2017. 11. 22.

비운의 조선시대 공주, 경혜공주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보셨던 분은 경혜공주를 아주 잘 알텐데요.

 

저도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던 것은 아니지만

부분부분 관심있는 부분은 다 보았답니다. 주인공 커플보다 경혜공주의

이야기가 더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경혜공주 위주로 보았는데요~

 

마침 유튜브에서 경혜공주의 삶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길래

흥미있게 보았고 이웃님들에게도 정보를 주고자 가져와봤습니다!

 

 

 

 

 

 

 

 

 

 

문종이 아직 세자인 시절 후궁인 승휘 권씨의 딸로 태어났던 경혜공주

이후 문종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세자빈 봉씨가 동성애 혐의로 폐위되자

승휘 권씨가 세자빈에 오르며 경혜공주는 평창군주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어머니인 세자빈 권씨는 단종을 낳은 후 젊은 나이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리고.. 후에 경혜공주와 단종 남매는 단 둘이 남겨져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당시 조선 왕녀의 혼인 적령기는 11~13세였지만

세종의 좋지 않은 건강과 어머니가 안 계신 아버지 문종과

동생을 위해서 경혜공주는 혼인을 늦추게 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인 세종의 건강이 악화 됨에 따라

혼인을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져 16세의 나이로

참판 정충경의 아들 정종과 혼인을 하게 됩니다.

 

 

 

 

 

 

 

 

 

 

결혼한지 52일만에 세종대왕은 승하하게 되고

살림집 준비도 미루며 할아버지의 소상을 치르고

할아버지의 삼년상을 끝낸지 얼마 안되어 아버지

문종마저 세상을 뜨고 맙니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삼년상에 이어 아버지의 삼년상도 치러야 했으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숙부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정권을 잡게되고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략하고

2년 뒤에는 동생 단종이 숙부의 압박에 못이겨 결국에는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게 되며

경혜공주의 남편 또한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가게됩니다.

 

 

 

 

 

 

 

 

 

 

 

 

이후 정종의 유배지는 영월에서 경기도 양근, 한성,

수원 및 김포로 변경되었고 유배지가 변경되며

경혜공주 역시 남편과 다시 재회할 수 있게 됩니다.

 

 

 

 

 

 

 

 

 

 

 

 

동생 단종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남편과 금성대군 등 다른 세력들의 움직임이

몇번이고있었지만 결국에는 왕위를 되찾지 못하였고 이 사건으로 인해

단종은 교살되고 남편 또한 능지처참이라는 매우 처참한 형벌에 처해지며

 경혜공주의 옆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부모도, 동생도, 남편도 모두 잃은 경혜공주는

연좌제로 인하여 이후에도 비극적인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저 글로만 전해져왔다면

이렇게까지 공감이 안되었을텐데 드라마로 한번

경혜공주의 비극적인 삶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큰 공감을 느낄 수 있었던것 같네요~

 

찬란하게 빛나야할 공주의 삶이 이렇게나

비극적이었다니.. 정말 운명이 야속하네요.

 

글을 쓰고보니 다시 오랜만에 공주의남자를

보고싶은데 시간이 날때 한번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 해봐야겠습니다~